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리히 폰 만슈타인 (문단 편집) == 평가 == '''눈앞에 있는 전선을 안정화시키는 능력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손꼽을 만했다.''' 일선 지휘관으로서도 우수할 뿐만 아니라 [[참모]]로서의 역량도 탁월했다. 아예 독일 국방군에서 가장 큰 전과를 올린 장군 중 하나이다. 전체 전황을 [[체스]]판처럼 보고 치밀하게 말을 움직이는 듯한 능력으로 찬사를 받는다. 또한 세계 전쟁사에서 군사적 열세를 순수 전략전술로 극복해낸 마지막 장군으로 꼽히기도 한다. [[서유럽]] 최강의 육군을 자랑했던 [[프랑스군]]을 4주 만에 끝장내고 이후 [[독소전쟁]]에서도 [[소련군]]은 만슈타인을 상대로 고전했다. 이에 대해 만슈타인이 주로 소련군을 상대해 왔기 때문에 미군이나 서방 측, 또 그들의 입장에서 주로 제2차 세계대전사를 접하는 국내에서는 동부전선에서 활약했던 만슈타인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는 의견도 있으나 잘못된 것이다. 국내에서도 낫질 작전의 기획자로 [[프랑스 침공]]의 대전략을 세운 인물로 [[다큐멘터리]] 등에 자주 나와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다. 오히려 엄청난 전과와 귀신 같은 활약에 비해 한국에 덜 알려진 인물은 [[발터 모델]] 쪽이 훨씬 더 그렇다. 게다가 [[겨울폭풍 작전]]에서 [[게오르기 주코프]]에게 결과적으로 패했던 만슈타인과 달리, [[제2차 세계 대전]] 최고의 방어전 지휘관 발터 모델은 [[르제프 전투]]에서 주코프에게 완승을 거두고 동부전선의 수호자, 방어전의 1인자로 찬사를 받았던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리델 하트]]는 "연합군에게 가장 두려운 천재"라며 극찬한 적이 있고[* 이는 간접적으로 만슈타인의 명성을 이용해 자신의 군사 전문가로서의 명성을 같이 드높히기 위한 후빨이었다. 만슈타인 본인도 이걸 알고 불쾌해했다.] [[하인츠 구데리안]]을 비롯한 독일군 장성들도 '독일군 최고의 두뇌'라고 인정한 바 있다. 전사학계에서는 만슈타인을 2차 대전 시기 [[독일 국방군]]에서 가장 유능했던 인물로 본다. [[아마존닷컴]]에서 검색해도 그를 다룬 영문 서적이 여러 권 검색된다. 독일군 명장으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에르빈 롬멜]]은 전술적 역량에선 가히 천재적이지만, 전략적 시야는 명성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이 많고, "야전 지휘관"에 최적이지만 사령관에는 다소 부족한 현장 지휘관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에르빈 롬멜과 [[버나드 로 몽고메리]]만큼까지는 아니라도 주코프와 자주 라이벌 플래그가 서는데 애시당초 라이벌 관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주코프는 소련군의 총사령관 대리로 실질적인 소련군의 총사령관 역할이었고 만슈타인은 육군 총사령부의 명령을 듣는 1개 집단군의 사령관이라 동일선상에 놓기가 힘들다.[* 주코프가 [[스타프카]]에서 맡던 지위에 해당하는 독일측 인물은 OKW 사령관 [[빌헬름 카이텔]]이지만, 카이텔이 그냥 히틀러의 명령을 육군에 단순히 전달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한 반면 주코프는 실제로 작전 전체를 입안하고 책임졌다. 물론 전쟁 초반에는 레닌그라드 수비사령관을 맡기도 했고, 후반기에는 다시 야전으로 돌아와 제2우크라이나 전선군 사령관을 맡아서 베를린 공략을 맡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카이텔은 '히틀러의 예스맨'이었던, 군사적인 능력이 전무한 인물이었다. --군사적 능력의 부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카이텔의 대척점은 [[클리멘트 보로실로프]]가 아닐까-- --그런데 하다 못해 보로실로프는 KV 시리즈라도 만들어 독일군을 엿먹였다--] 그러나 최신 연구성과를 반영한 만슈타인 전기([[http://www.amazon.com/Manstein-Hitlers-Greatest-Mungo-Melvin/dp/0312563124|Manstein: Hitler's Greatest General, 2011]])를 쓴 Mungo Melvin은 만슈타인을 독일군에서 최고의 능력자라고 평가하면서도, 작전술 면에서 만슈타인과 비교할 만한 지휘관은 서방 연합국에는 없는 것 같고(즉 [[조지 S. 패튼]], [[버나드 로 몽고메리]],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능력이 만슈타인보다 처진다고 디스한 셈이다), 소련의 주코프 정도는 되어야 비교 가능하다고 한 걸로 봐서는 이런 가상적인 라이벌 관계는 서방 전사학계에 널리 퍼져 있는 떡밥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책 한권만 놓고 그런 비교가 서방 학계에 널리 퍼져있다고 보긴 어렵다. 전문 군사사학자들은 그런 비교를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만슈타인 역시 다른 독일 장군들처럼 단기전, 기동전 범주에서 벗어나 산업화된 시대의 전쟁, [[총력전]]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자질 문제를 떠나 한번도 중심국가가 되어보지 못하고 지역강국에 머무른 국가자체의 한계에서 비롯된 문제점이라서 독일, 특히 프로이센 귀족 출신 장군들은 극복할 방법이 없었다. T-34와 티거&판터, 만슈타인과 주코프를 비교해보면 왜 독일이 전쟁에 질 수 밖에 없었는지가 드러난다. 독일의 전차와 장군들은 눈앞의 전투에선 눈부셨지만 전쟁에선 마이너스 요소 투성이였다. 독일은 전술적으론 대전말까지 소련을 앞질렀지만 전략, 정치에서의 무지는 전술적 우위로 덮을 수 있는게 아니었다.] 만슈타인도 결국 훨씬 거대한 적을 전술적 우월함으로 단기간에 제압할 수 있다고 믿고 사방에 적을 만든 프로이센의 군인이었다. 그가 할 수 있었던건 그저 눈앞의 소련군에게 거대한 손실을 입히고 자기가 있는 전선을 안정시키는 것까지였다. 반면 적수였던 소련군은 로마노프 왕조의 성립기부터 [[러시아 제국]]과 소련으로 이어지는 그 역사속에 늘 안보위협(몽골, 무슬림 토후, 오스만, 폴란드, 독일, 나폴레옹 등 끝도 없이 나온다)이 산재했고 드넓은 국토탓에 군사력으로 이것들을 일일이 커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쪽에 감각이 굉장히 잘 발달해 있었다. 무엇보다 그 넓은 러시아 땅에서 양쪽으로 공격받으며, 전세계 강국들이 모두 뛰어들어 군사적인 부분보다도 정치적, 전략적 부분이 아주 중요했던 [[러시아 내전]]의 경험이 정계와 군부에 스며들어 있었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군사적으론 많은 실책을 저질렀을지언정 정치적으론 최대한 유리한 판을 조성하고 많은 걸 얻어냈고, 소련 장군들은 만슈타인이 자신들의 눈앞에서 얼마의 피해를 주든 미국의 지원과 자국의 역량으로 빚어낸 방대한 전력을 어디에 어떤 식으로 투입시켜야 하는지 정확하게 꿰고 있었다. 결국 다른 전선에 구멍이 뚫리고 종국에는 전선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만슈타인이 명장의 영역을 넘어선 전략-정치 분야를 건드린 사례는 거의 없다. 원수씩이나 되어서도 전략에 정치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는데, 1944년 퇴각과 현지 사수를 놓고 벌인 히틀러와의 논쟁만 해도 군인으로선 합리적이지만 정치인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만을 고집했다. 1943년 연합군이 이탈리아에 상륙하자 히틀러는 동부전선에 전력 약화를 감수하고 20개 사단이 종전때까지 주둔하게 했다. 단순히 군사적인 부분만 본다면 동부전선이 이탈리아보다 훨씬 중요하지만 정치적인 부분, 추축국의 안정화에서 바라볼 경우 이탈리아는 어떻게든 지켜내야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략적으로 보자면 이탈리아 전선이 뚫리면 연합군은 단기간에 독일 본토로 프리패스할 수 있게 되므로 히틀러는 국가의 최고 정책입안자로써 '''매우 정상적인 결정을 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만슈타인은 전세가 기울기 시작한 시점에서조차 이러한 조치를 이해하려고 시도조차 안한 셈이다. 게다가 비굴한 처세로 1인자 히틀러와는 사이가 안좋았고 충성심을 의심받았다. 그 무시무시한 스탈린과 손발을 맞춘 주코프가 아슬아슬하긴 해도 충성심을 인정받고 직언을 할 수 있었던 반면 앞에서 비굴하고, 뒤에서 욕하는 만슈타인에 대한 히틀러의 정치적, 인간적 신뢰는 제로에 가까워서 그의 발언을 더욱 받아들여지기 힘들게 만들었다. 이는 또다른 명장 [[발터 모델]]이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히틀러와 언쟁하거나 직설을 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아서[* 일례로 히틀러가 자신의 군사적 작전에 일일이 간섭하고 훼방을 놓으려 하자 히틀러에게 9군의 사령관이 누구냐며 직접 질문하는 식으로 강경하게 밀고 나가기도 했다. 물론 결과는 성공.] 역으로 신뢰를 얻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었던 것과도 대비된다. 구데리안 역시 회고록에서 만슈타인은 히틀러 앞에서는 무조건 굽히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평했다. 결국 독일군은 눈앞의 전장을 승리로 이끌고도 다른 전선에서 생기는 구멍을 막지 못했고 끝내 지속적으로 소모된 끝에 무너져 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